자유아시아방송2024-08-01 05:40:00
목선 탈북 20대 “ ‘김주애=핵 개발 천재’ 소문...청년들 불만 팽배”
앵커: 지난 해 10월 동해에서 목선을 타고 탈북한 가족 이야기 들어보셨을텐데요, 엄마와 이모를 설득해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온 23살 탈북민 강규리 씨와 강종석 통일부 인권인도실장이 미국을 찾았습니다. 자민 앤더슨 기자가 직접 만났습니다.
[뉴스 오디오] 오늘 오전 동해상에서 북한 주민 4명이 목선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 북한 주민 4명이 오늘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서 발견돼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지난해 10월 소형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했던 23살 강규리 씨.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미국 일정에 동행한 그를 직접 만났습니다.
규리 씨는 약 9개월 전 동해상에서 처음 한국인을 만난 순간이 생생합니다.
강규리 씨: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제 느낌은 배가 너무 멋있었어요. 그래서 ‘우와 배 너무 멋있다’하면서 기분에 젖어있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혹시 북한에서 탈북 오셨어요?”하셨는데 배에 신경이 가서 “배 너무 멋있어요”하다가 두번째 질문에 “네 맞아요”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분이 “참 잘 오셨습니다.” 그 말 듣고 눈물이 났어요.
시속 3~4km의 느린 목선 엔진에 의지해 버텼던 바다 위에서의 30 시간.
북방한계선(NLL)을 넘기 직전, 북한 경비정에게 3시간 동안 추적을 당했습니다.
강규리 씨: 이제는 ‘내가 죽어야겠구나,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순간에 느낀 감정인데요, 제가 자유를 찾아서 대한민국에 목숨을 내걸고 왔잖아요. 자유라는 건 인간에게 영혼의 심장이 아닌가 싶었어요. 저한테 자유는 목숨을 내던질만큼 귀중해요. 그래서 그때만큼은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도 ‘내가 죽어도 남한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함경남도 어촌에 거주했던 규리 씨는 어린 나이에 조개잡이 선주 일을 하며 비교적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선을 넘나드는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북한에서의 삶은 가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강규리 씨: 코로나 3년 이후로 북한이 되게 어려워지고, 또 정부가 말도 안되는 일로 총살하고 우리 청년들을 파리 목숨보다 더 못하게 죽이거든요. 그때 나는 여기에서 더 살 필요가 있을까. 선주 일 하면서 아무리 돈을 번다고 해도, 내가 여기에서는 장차 가망이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는 죽어도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지인들의 처형을 목격한 것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강규리 씨: (처형은) 너무 흔한 일이었어요. 옛날에는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걸려도 돈만 있으면 괜찮았는데 이제는 돈으로도 안 돼요. 제가 알던 친구 중에 19살짜리 청년은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현장에서 잡혀서 한달의 재판 끝에 총살, 사형을 당했습니다. 21살짜리 청년은 간부 자식이었는데 3년 교화형을 받았던 걸 아빠가 몰래 빼냈다가 다시 문제가 돼서 아빠까지 처형을 당했습니다.
함께 붙잡힌 그의 여자친구는 임신 4개월이라는 이유로 처벌이 지연됐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규리 씨는 북한을 떠났습니다.
북한 당국은 외부정보를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2020년에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하며 정보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리 씨는 “더 이상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은 외국 영상물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4일 RFA 본사를 방문한 강규리 씨와 강종석 인권인도실장. 왼쪽부터 한종욱 인권인도실 과장, 강종석 인권인도실장, 강규리 씨, 장애리 사무관. / RFA Photo
통일부가 지난 6월 발간한 ‘2024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2011~2015년 탈북민의 경우 81.4%가, 2016~2020년 사이 탈북민은 83.3%가 외국 영상물을 시청했다고 답했습니다.
규리 씨 역시 북한에서 한국 방송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는 기억에 남는 드라마와 TV 프로그램 제목을 술술 읊었습니다.
강규리 씨: 저는 ‘힐러’라는 드라마도 봤고, ‘상속자들’, ‘김 비서가 왜 이럴까’ ‘겨울연가’ ‘가을동화’ ‘시티헌터’ 그 다음에 ‘이태원 클라스’… 사실 제가 더 많이 봤을거예요. 또 남한 TV KBS 방송의 한국인의 밥상과 같은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봤습니다. 거기서 북한 탈북민이 성공한 사례를 직접 나와서 얘기할 때 그때 저는 너무 (한국에) 가고 싶었어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은 그런 생각이 점점 더 들었어요.
2017년 7월 24일, 대학생들이 평양의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 AP
<관련 기사>
20대 탈북민 “북 국경봉쇄로 살인적 고물가에 아사자 늘어”
북 MZ세대 해외노동자 집단행동에 당국 ‘골머리’
북 장마당세대 “국가보다 개인 경제적 안정이 중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MZ 세대의 탈북이 최근들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22년 한국에 입국한 MZ 세대 탈북민의 수는 34명으로 전체의 50.7%, 2023년에는 99명으로 50.5%를 기록했습니다.
강종석 통일부 인권인도실장은 MZ세대와 더불어 외교관 등 엘리트층의 탈북이 증가한 점도 외부정보 접촉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강종석 실장: 북한이 약 9곳의 재외공관을 정리하고 한 40여개 공관이 남아있습니다. 그 공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귀국해야 하는 것에 대한 상당한 부담 때문에 북한을 이탈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들과 MZ세대는 외부 영상물 시청 등을 통해 바깥의 정보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2020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청년절 행사 모습./ AP
23살의 MZ세대인 규리 씨도 “주민들의 인식이 매년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면서 “반란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강규리 씨: (한국 드라마로 인해) 저희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잘못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 문화를 따라하고, 하지 말라는 옷차림을 계속 하고 다니는 것도 하나의 변화입니다. 당국이 적극적으로 그것을 통제하고 총살까지 함에도 청년들이 계속하는 것도 하나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더는 이렇게 못살겠다 싶으면 아마 반란도 일어나지 않을까. 불만이 고조되고 있죠, 이제는 팽창한 상태예요. 건드리면 터질 듯….
과거 어른 세대는 참고 받아들이던 통제에 대해 이제 젊은 세대들은 “왜 그래야 하느냐” “뭐가 잘못됐느냐”라고 반문하며 “코로 웃는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김씨 정권에 대한 낮은 충성심도 북한 내 젊은 세대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규리 씨에 따르면, 북한 청년들은 “김(씨)대는 3대까지 밖에 못가”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강종석 실장은 “제대로 작동하는 식량 배급제를 경험해 본 적 없이 스스로 식량을 구해야 하는 젊은 세대는 정권에 고마움을 느끼는 부모님 세대와는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종석 실장: 최근에는 배급받고 이런 것이 별로 없었어요. 최근 젊은 세대는 나라에서 별로 빚진 게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나라가 나한테 이렇게 요구하고 단속하느냐’하는 그런 생각들이 많이 깔려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주애 후계자설에 대한 주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고 규리 씨는 말했습니다.
강규리 씨: 한 나라의 공주가 등장한다고 해서 우리 청년들 모두가 신기해했어요. 근데 계속 핵 관련 행사에 같이 따라다니고, 정치 쪽으로 많이 다니더라고요. 설마 후계자? 그랬더니 사람들이 “우리가 그건 이해 못하지”라고 표현하더라구요. 저도 너무 터무니가 없었어요.
김주애는 ‘핵을 개발하는 엄청난 천재’라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규리 씨가 한국 땅을 밟은지 약 9개월, 한국 사회에 나온지는 4개월입니다.
자유의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그는 지금 대학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강규리 씨: 저는 포부가 엄청 커졌어요. 노력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열심히 노력하고 많이 배워서 저를 많이 보여줄겁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
앵커: 지난 해 10월 동해에서 목선을 타고 탈북한 가족 이야기 들어보셨을텐데요, 엄마와 이모를 설득해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온 23살 탈북민 강규리 씨와 강종석 통일부 인권인도실장이 미국을 찾았습니다. 자민 앤더슨 기자가 직접 만났습니다.
[뉴스 오디오] 오늘 오전 동해상에서 북한 주민 4명이 목선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 북한 주민 4명이 오늘 강원도 속초 앞바다에서 발견돼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지난해 10월 소형 목선을 타고 동해로 귀순했던 23살 강규리 씨.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미국 일정에 동행한 그를 직접 만났습니다.
규리 씨는 약 9개월 전 동해상에서 처음 한국인을 만난 순간이 생생합니다.
강규리 씨: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제 느낌은 배가 너무 멋있었어요. 그래서 ‘우와 배 너무 멋있다’하면서 기분에 젖어있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혹시 북한에서 탈북 오셨어요?”하셨는데 배에 신경이 가서 “배 너무 멋있어요”하다가 두번째 질문에 “네 맞아요”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분이 “참 잘 오셨습니다.” 그 말 듣고 눈물이 났어요.
시속 3~4km의 느린 목선 엔진에 의지해 버텼던 바다 위에서의 30 시간.
북방한계선(NLL)을 넘기 직전, 북한 경비정에게 3시간 동안 추적을 당했습니다.
강규리 씨: 이제는 ‘내가 죽어야겠구나,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순간에 느낀 감정인데요, 제가 자유를 찾아서 대한민국에 목숨을 내걸고 왔잖아요. 자유라는 건 인간에게 영혼의 심장이 아닌가 싶었어요. 저한테 자유는 목숨을 내던질만큼 귀중해요. 그래서 그때만큼은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도 ‘내가 죽어도 남한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함경남도 어촌에 거주했던 규리 씨는 어린 나이에 조개잡이 선주 일을 하며 비교적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선을 넘나드는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북한에서의 삶은 가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강규리 씨: 코로나 3년 이후로 북한이 되게 어려워지고, 또 정부가 말도 안되는 일로 총살하고 우리 청년들을 파리 목숨보다 더 못하게 죽이거든요. 그때 나는 여기에서 더 살 필요가 있을까. 선주 일 하면서 아무리 돈을 번다고 해도, 내가 여기에서는 장차 가망이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나는 이제는 죽어도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지인들의 처형을 목격한 것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강규리 씨: (처형은) 너무 흔한 일이었어요. 옛날에는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걸려도 돈만 있으면 괜찮았는데 이제는 돈으로도 안 돼요. 제가 알던 친구 중에 19살짜리 청년은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현장에서 잡혀서 한달의 재판 끝에 총살, 사형을 당했습니다. 21살짜리 청년은 간부 자식이었는데 3년 교화형을 받았던 걸 아빠가 몰래 빼냈다가 다시 문제가 돼서 아빠까지 처형을 당했습니다.
함께 붙잡힌 그의 여자친구는 임신 4개월이라는 이유로 처벌이 지연됐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규리 씨는 북한을 떠났습니다.
북한 당국은 외부정보를 체제 유지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2020년에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하며 정보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리 씨는 “더 이상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은 외국 영상물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4일 RFA 본사를 방문한 강규리 씨와 강종석 인권인도실장. 왼쪽부터 한종욱 인권인도실 과장, 강종석 인권인도실장, 강규리 씨, 장애리 사무관. / RFA Photo
통일부가 지난 6월 발간한 ‘2024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2011~2015년 탈북민의 경우 81.4%가, 2016~2020년 사이 탈북민은 83.3%가 외국 영상물을 시청했다고 답했습니다.
규리 씨 역시 북한에서 한국 방송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는 기억에 남는 드라마와 TV 프로그램 제목을 술술 읊었습니다.
강규리 씨: 저는 ‘힐러’라는 드라마도 봤고, ‘상속자들’, ‘김 비서가 왜 이럴까’ ‘겨울연가’ ‘가을동화’ ‘시티헌터’ 그 다음에 ‘이태원 클라스’… 사실 제가 더 많이 봤을거예요. 또 남한 TV KBS 방송의 한국인의 밥상과 같은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많이 봤습니다. 거기서 북한 탈북민이 성공한 사례를 직접 나와서 얘기할 때 그때 저는 너무 (한국에) 가고 싶었어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은 그런 생각이 점점 더 들었어요.
2017년 7월 24일, 대학생들이 평양의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 AP
<관련 기사>
20대 탈북민 “북 국경봉쇄로 살인적 고물가에 아사자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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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장마당세대 “국가보다 개인 경제적 안정이 중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MZ 세대의 탈북이 최근들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22년 한국에 입국한 MZ 세대 탈북민의 수는 34명으로 전체의 50.7%, 2023년에는 99명으로 50.5%를 기록했습니다.
강종석 통일부 인권인도실장은 MZ세대와 더불어 외교관 등 엘리트층의 탈북이 증가한 점도 외부정보 접촉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강종석 실장: 북한이 약 9곳의 재외공관을 정리하고 한 40여개 공관이 남아있습니다. 그 공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귀국해야 하는 것에 대한 상당한 부담 때문에 북한을 이탈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들과 MZ세대는 외부 영상물 시청 등을 통해 바깥의 정보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2020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청년절 행사 모습./ AP
23살의 MZ세대인 규리 씨도 “주민들의 인식이 매년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면서 “반란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강규리 씨: (한국 드라마로 인해) 저희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잘못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 문화를 따라하고, 하지 말라는 옷차림을 계속 하고 다니는 것도 하나의 변화입니다. 당국이 적극적으로 그것을 통제하고 총살까지 함에도 청년들이 계속하는 것도 하나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더는 이렇게 못살겠다 싶으면 아마 반란도 일어나지 않을까. 불만이 고조되고 있죠, 이제는 팽창한 상태예요. 건드리면 터질 듯….
과거 어른 세대는 참고 받아들이던 통제에 대해 이제 젊은 세대들은 “왜 그래야 하느냐” “뭐가 잘못됐느냐”라고 반문하며 “코로 웃는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김씨 정권에 대한 낮은 충성심도 북한 내 젊은 세대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규리 씨에 따르면, 북한 청년들은 “김(씨)대는 3대까지 밖에 못가”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강종석 실장은 “제대로 작동하는 식량 배급제를 경험해 본 적 없이 스스로 식량을 구해야 하는 젊은 세대는 정권에 고마움을 느끼는 부모님 세대와는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종석 실장: 최근에는 배급받고 이런 것이 별로 없었어요. 최근 젊은 세대는 나라에서 별로 빚진 게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나라가 나한테 이렇게 요구하고 단속하느냐’하는 그런 생각들이 많이 깔려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주애 후계자설에 대한 주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고 규리 씨는 말했습니다.
강규리 씨: 한 나라의 공주가 등장한다고 해서 우리 청년들 모두가 신기해했어요. 근데 계속 핵 관련 행사에 같이 따라다니고, 정치 쪽으로 많이 다니더라고요. 설마 후계자? 그랬더니 사람들이 “우리가 그건 이해 못하지”라고 표현하더라구요. 저도 너무 터무니가 없었어요.
김주애는 ‘핵을 개발하는 엄청난 천재’라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규리 씨가 한국 땅을 밟은지 약 9개월, 한국 사회에 나온지는 4개월입니다.
자유의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그는 지금 대학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강규리 씨: 저는 포부가 엄청 커졌어요. 노력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열심히 노력하고 많이 배워서 저를 많이 보여줄겁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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