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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아시아방송2024-07-31 02:00:00

혜산시 일부 주민들, 압록강 범람 긴급대피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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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양강도 당국이 최근 압록강 범람 위기를 맞아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지시했으나 많은 주민들이 그 지시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왜 그런건지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7일 저녁부터 28일 새벽까지 쏟아진 폭우로 양강도 혜산시를 감싸며 흐르는 압록강이 한때 범람 위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강도 당국이 방송선전차까지 동원해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지시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이 대피하지 않았다고 복수의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자신을 압록강 주변에 산다고 소개한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8 일 “지난 이틀 동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면서 “압록강의 수위가 한 시간에 최대 2미터씩 오르내리기를 수차례나 반복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성후동의 압록강 제방 아래에 있던 국경경비대 건물과 혜산시 건설 돌격대 건물들은 모두 물에 잠겼다”며 “혜산광업대학 옆의 압록강으로 연결된 도로와 혜강동의 압록강 제방에는 불어난 물이 넘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래를 채운 마대들을 겹겹이 쌓아 놓았다”고 설명했습니다.
 


29일 오후 3시 중국 장백현에서 바라본 혜산시 성후동 주변 압록강의 상황

소식통은 “이번 비는 27일 낮부터 약하게 내리고 멎기를 반복하다가 28일 새벽 2시부터 아침 7시까지 폭우로 변했다”면서 “제일 긴장했던 시각은 28일 아침 6시부터 7시 사이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때 방송차가 압록강 주변 마을들을 돌며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지시했다”며 “인민반 담당 안전원들과 도 안전국(경찰) 기동타격대, 국경경비대와 장마피해 비상대책상무 성원들, 인민반장들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긴급 대피를 호소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그럼에도 주민들은 압록강 제방 위에 올라서서 발만 동동 굴렀을 뿐 대피는 하지 않았다”면서 “일부 가정들은 재봉기와 전기밥가마(전기밥솥) 같은 것들을 지워 아이들만 대피시키고 어른들은 집에 남아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압록강 주변은 집 값이 비싸 혜산시에서도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며 “냉동기(냉장고)와 텔레비죤, 재봉기와 같이 비싼 재산들을 갑자기 옮길 수가 없어 위험한 줄 알면서도 대피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소식통은 “우리나라(북한)에는 온 집안 식구들이 몇 십년 동안 뼈빠지게 일을 했음에도 아직 텔레비죤(TV)이나 재봉기(미싱)조차 마련 못한 집들이 정말 많다”며 “집을 비워두면 도둑들이 달려들어 한순간에 재산을 다 털어 가기 때문에 어른들은 물이 불어도 대피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련기사>
양강도, 국지성 폭우와 돌풍에 피해 속출
자연재해 대책 마련 지시로 북 농민 부담 늘어
  
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간부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29일 “이번 폭우는 28일 아침에 멈추었고 이후 29일 새벽까지 약한 비가 자주 내렸다”며 “아직 비가 완전히 멈추지 않아 압록강의 물도 줄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이번 폭우에 양강도 비상대책상무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면서 “한밤중에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국경경비대와 기동타격대까지 동원해 주민 안전에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소식통은 “중앙의 지시에 따라 양강도에 장마피해 비상대책상무가 조직된 것은 지난 6월 29일이었다”며 “중앙에서 당장 큰 비가 내린다며 비상대책 상무를 긴급히 조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비상대책상무는 각 공장기업소들에서 모래주머니를 거두어 들였다”며 “이번 폭우에 압록강과 연결된 성후천 물이 역류해 모래주머니가 없었다면 큰 일이 날 뻔 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압록강이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비상대책상무는 혜산시가 보유하고 있는 방송선전차 3대를 모두 동원해 주민 대피 지시를 알렸다”면서 “비상대책상무 성원들과 함께 안전원(경찰)들도 밤중에 비상소집을 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압록강 인근의 주민대피에는 실패했다”며 “압록강 인근의 주민들은 ‘집도 재산도 다 잃을 바엔 차라리 물에 휩쓸려 죽겠다’며 비상대책상무의 긴급 대피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앵커: 북한 양강도 당국이 최근 압록강 범람 위기를 맞아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지시했으나 많은 주민들이 그 지시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왜 그런건지 북한 내부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7일 저녁부터 28일 새벽까지 쏟아진 폭우로 양강도 혜산시를 감싸며 흐르는 압록강이 한때 범람 위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양강도 당국이 방송선전차까지 동원해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지시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이 대피하지 않았다고 복수의 현지 소식통들이 밝혔습니다.
 
자신을 압록강 주변에 산다고 소개한 양강도의 한 주민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8 일 “지난 이틀 동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면서 “압록강의 수위가 한 시간에 최대 2미터씩 오르내리기를 수차례나 반복했다”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성후동의 압록강 제방 아래에 있던 국경경비대 건물과 혜산시 건설 돌격대 건물들은 모두 물에 잠겼다”며 “혜산광업대학 옆의 압록강으로 연결된 도로와 혜강동의 압록강 제방에는 불어난 물이 넘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래를 채운 마대들을 겹겹이 쌓아 놓았다”고 설명했습니다.
 


29일 오후 3시 중국 장백현에서 바라본 혜산시 성후동 주변 압록강의 상황

소식통은 “이번 비는 27일 낮부터 약하게 내리고 멎기를 반복하다가 28일 새벽 2시부터 아침 7시까지 폭우로 변했다”면서 “제일 긴장했던 시각은 28일 아침 6시부터 7시 사이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때 방송차가 압록강 주변 마을들을 돌며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지시했다”며 “인민반 담당 안전원들과 도 안전국(경찰) 기동타격대, 국경경비대와 장마피해 비상대책상무 성원들, 인민반장들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긴급 대피를 호소했다”고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또 소식통은 “그럼에도 주민들은 압록강 제방 위에 올라서서 발만 동동 굴렀을 뿐 대피는 하지 않았다”면서 “일부 가정들은 재봉기와 전기밥가마(전기밥솥) 같은 것들을 지워 아이들만 대피시키고 어른들은 집에 남아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식통은 “압록강 주변은 집 값이 비싸 혜산시에서도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며 “냉동기(냉장고)와 텔레비죤, 재봉기와 같이 비싼 재산들을 갑자기 옮길 수가 없어 위험한 줄 알면서도 대피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소식통은 “우리나라(북한)에는 온 집안 식구들이 몇 십년 동안 뼈빠지게 일을 했음에도 아직 텔레비죤(TV)이나 재봉기(미싱)조차 마련 못한 집들이 정말 많다”며 “집을 비워두면 도둑들이 달려들어 한순간에 재산을 다 털어 가기 때문에 어른들은 물이 불어도 대피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관련기사>
양강도, 국지성 폭우와 돌풍에 피해 속출
자연재해 대책 마련 지시로 북 농민 부담 늘어
  
이와 관련 양강도의 한 간부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29일 “이번 폭우는 28일 아침에 멈추었고 이후 29일 새벽까지 약한 비가 자주 내렸다”며 “아직 비가 완전히 멈추지 않아 압록강의 물도 줄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이번 폭우에 양강도 비상대책상무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면서 “한밤중에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국경경비대와 기동타격대까지 동원해 주민 안전에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소식통은 “중앙의 지시에 따라 양강도에 장마피해 비상대책상무가 조직된 것은 지난 6월 29일이었다”며 “중앙에서 당장 큰 비가 내린다며 비상대책 상무를 긴급히 조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비상대책상무는 각 공장기업소들에서 모래주머니를 거두어 들였다”며 “이번 폭우에 압록강과 연결된 성후천 물이 역류해 모래주머니가 없었다면 큰 일이 날 뻔 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압록강이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비상대책상무는 혜산시가 보유하고 있는 방송선전차 3대를 모두 동원해 주민 대피 지시를 알렸다”면서 “비상대책상무 성원들과 함께 안전원(경찰)들도 밤중에 비상소집을 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압록강 인근의 주민대피에는 실패했다”며 “압록강 인근의 주민들은 ‘집도 재산도 다 잃을 바엔 차라리 물에 휩쓸려 죽겠다’며 비상대책상무의 긴급 대피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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