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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아시아방송2024-03-15 02:20:00

[여성인터뷰] “북 주민들, 인생 1분·1초 소중히 하며 견뎌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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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말 일본 도쿄고등법원은 북한 당국이 ‘재일교포 북송사업’ 피해자들에게 자행한 불법행위를 다시 판단하라며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1심 법원에서 다시 이뤄질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북송 피해자 지원단체 ‘모두 모이자’ 사무국장이자 ‘북송 2세’인 리소라 씨를 홍승욱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어떤 계기로 탈북을 결심하셨습니까?
리소라 사무국장: 마약 사건을 겪고 나서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실은 탈북하기 3~4년 전쯤엔 큰 부를 이뤘습니다. 주변에 탈북한 사례가 많았지만 저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어요. 북한 당국이 어떤 짓까지 해가며 사회를 유지해가는지 그것을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살던 고등학교 2학년인 옆집 아이가 마약에 중독된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제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이 돼서 탈북까지 결심하게 됐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이른바 ‘북송 2세’들만이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면?
리소라 사무국장: 개인적으론 정체성의 문제였습니다. 저는 분명 북한에서 태어났는데,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태어나보니 저는 동요계층(動搖階層)이고, 7살쯤 되니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같은 학급 친구가 저를 차별하는 겁니다. 같은 해에 같이 태어났잖아요? 북한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교육을 받을 틈도 없잖아요.
제가 그 이유를 모르다가 8살, 9살이 돼서야 안 겁니다. 7살때쯤 차별이 굉장히 심해졌는데, 그때부터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도대체 나는 뭐지?’ 하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었던 것 같아요.
북한의 신분제도는 위에서 아래를 차별하고 천대하고 핍박해도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오히려 얼마나 더 핍박하고 차별하는가 하는 것으로 충성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기자: 고향을 떠나 외국(일본)에 거주하고 계신데, 북한에서의 생활이 그보다 더 힘드셨는지?
리소라 사무국장: 훨씬 힘들죠. 제가 탈북해서 일본으로 갈 때 그런 고민이 컸습니다. 원래 탈북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내가 태어난 이 땅에서도 설 곳이 없는데, 외국에 가면 어떻게 될까’ 겁이 났던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외국인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북한에 비하면 지상낙원입니다. 여러분이 상상을 하기 힘드실 정도로 그 힘든 차별을 겪었는데,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인간의 모습 그 모든 것을 말살하는 것입니다. 그 땅(북한)은 지금 제가 아는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곳입니다.
 
기자: 일본 법원에서 열린 북한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승소하셨는데, 당시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리소라 사무국장: 일본 법원의 1심, 2심 재판관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 문제가 일본에선 정치적인 문제거든요. 재판부가 큰 용기를 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처음 소송을 할 때 최소한 상징적인 의미라도 집중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1심 재판관들이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의하고 접근해 주신 겁니다. 그 부분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의미가 있는 판결이 나왔는데, 고등법원에서는 승소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사안이 원심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저희에겐 한 80% 정도는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제 좀 더 긴장을 하려 하고, 또 북한에서 오고 일본에서 살고 있는 저희들은 정말 소수자에 해당하는데, 이번 일을 통해 법이 왜 존재해야 하며 이 사회의 평화가 법이라는 체계를 통해 보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리소라 '모두 모이자' 사무국장 / RFA PHOTO

 
기자: 북한 당국의 불법행위를 인정 받더라도, 실제로 배상금을 받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리소라 사무국장: 그렇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오토 웜비어 씨 측 변호를 맡았던 변호인들과 저희 변호인들이 연락을 하고 있고, 한국 내 국군포로 어르신들 재판도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보니 그 배상금을 어떻게 회수 할지에 대한 문제거든요. 미국에서는 그걸 회수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졌는데, 일본에서도 조총련 관련 재산 등에 집행을 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와 한국, 미국 측이 국제적인 협력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국회에는 관련 입법도 요청하려 하고 있습니다.
원고들이 지금까지 겪은 피해에 재판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모두 되새겨야 해서 많이 힘들었고,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어도 아직 먼 길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단념하지 않고 가장 좋은 길을 찾기 위해서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기자: 최근 북한이 일본에 관계 개선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리소라 사무국장: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쟁은 갈등보다는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요.
다만 북한 측에는 여러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한미일 협력도 깨고 싶고, 또 일본으로부터 여러 경제적인 이득도 취할 수 있을 것이고, 세계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가 공론화되는 상황에 '우리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려는 일종의 전술로 보이기도 합니다. 국제사회가 그런 노림수에 너무 놀아나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하고, 한국과 일본 등 국제사회는 정도를 걸으면서 북한과 협상한다면 실패는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자: 한국과 일본, 북한 당국에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리소라 사무국장: 우선 저는 북한을 국가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1개의 반란 집단, 악의 집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도 인간이고, 아직 젊잖아요. 당신에게도 인생은 한 번 뿐인데, 용기를 내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의지하지 말고 한 번쯤은 인생을 되돌아보고 용기를 내서 악순환을 끊고 자기 인생을 살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지금 납북자 문제에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에 섭섭함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북한에 간 10만 명 가운데는 수천 명의 일본인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들을 방치하지 말고 북한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으면 하고요.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에 집중해주는 것에는 매우 감사하고 있고, 좀 더 미국과 일본보다 주도권을 쥐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북송 피해자 지원단체 '모두 모이자'는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상징하는 기념물 설치와 '버드나무 거리' 조성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 RFA PHOTO

 
기자: 방송을 청취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당부 하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리소라 사무국장: 여러분이 북한에서 겪는 1분, 1초가 얼마나 길고 힘든지를 저희는 경험자로서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귀한 인생, 그 시간을 좀 더 자유와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에서 보내실 수 있도록 저희가 있는 힘껏, 한국 정부·국민,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으니까 그 곳에서도 최대한 건강과 삶, 시간을 귀하게 여기시고 주어진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 사회에는 당국의 탄압, 특히 연좌제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할 때 주변 분들이 말씀하세요. 북한에 가족이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하는데, 누군가는 이 연좌제를 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게 무서워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북한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계속할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로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죄송하지만 역사는 그렇잖아요. 무엇인가 큰 전환점이 올 때 동반되는 희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필요하다면,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그런 마음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여기서 누군가의 목숨, 인권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면 그게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좋은 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요.
지금 탄압을 받아 한 명이 쓰러지면 두 명이 일어나고, 두 명이 쓰러지면 세 명이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라도 그 부조리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용기 있는 분들은 꼭 힘을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분들이 저희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 정부가 지난 2017년부터 제재를 가해서 지금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약도 못 보내고 해서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 제가 더 활동을 열심히 해서 한 시라도 빨리 북한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도 우연하게라도 이 방송을 듣는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라도 살아남았으면 좋겠고요. 여기 있는 가족들은 건강히 잘 있으니, 언젠가는 꼭 만날 희망을 버리지 말고 꿋꿋이 살아 계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자: 청취자들에게 더 전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리소라 사무국장: 저희와 10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시던 부대표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북한에서 오신 피해자의 한 분으로서 어떤 보수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원고의 한 분으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못 보고 중병을 얻어 떠나셔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 분에 대한 기억과 추모의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또 올해는 저희 ‘모두 모이자’ 활동의 전환점이자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루 24시간 중 1분씩만 동참을 해 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고요. 시간이 되시는 분은 시간으로, 지식이 있는 분들은 지식으로, 그것도 어려우시다면 한 달에 5천 원 정도의 지원을 해 주신다면 하루 1분의 활동을 해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이런 ‘1분’ 동참 활동에 많은 한국 국민들께서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기자: 지금까지 리소라 ‘모두 모이자’ 사무국장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목용재, 웹팀 김상일




앵커: 지난해 말 일본 도쿄고등법원은 북한 당국이 ‘재일교포 북송사업’ 피해자들에게 자행한 불법행위를 다시 판단하라며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1심 법원에서 다시 이뤄질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북송 피해자 지원단체 ‘모두 모이자’ 사무국장이자 ‘북송 2세’인 리소라 씨를 홍승욱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어떤 계기로 탈북을 결심하셨습니까?
리소라 사무국장: 마약 사건을 겪고 나서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실은 탈북하기 3~4년 전쯤엔 큰 부를 이뤘습니다. 주변에 탈북한 사례가 많았지만 저는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어요. 북한 당국이 어떤 짓까지 해가며 사회를 유지해가는지 그것을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살던 고등학교 2학년인 옆집 아이가 마약에 중독된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제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이 돼서 탈북까지 결심하게 됐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이른바 ‘북송 2세’들만이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면?
리소라 사무국장: 개인적으론 정체성의 문제였습니다. 저는 분명 북한에서 태어났는데,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태어나보니 저는 동요계층(動搖階層)이고, 7살쯤 되니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같은 학급 친구가 저를 차별하는 겁니다. 같은 해에 같이 태어났잖아요? 북한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교육을 받을 틈도 없잖아요.
제가 그 이유를 모르다가 8살, 9살이 돼서야 안 겁니다. 7살때쯤 차별이 굉장히 심해졌는데, 그때부터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도대체 나는 뭐지?’ 하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었던 것 같아요.
북한의 신분제도는 위에서 아래를 차별하고 천대하고 핍박해도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오히려 얼마나 더 핍박하고 차별하는가 하는 것으로 충성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기자: 고향을 떠나 외국(일본)에 거주하고 계신데, 북한에서의 생활이 그보다 더 힘드셨는지?
리소라 사무국장: 훨씬 힘들죠. 제가 탈북해서 일본으로 갈 때 그런 고민이 컸습니다. 원래 탈북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내가 태어난 이 땅에서도 설 곳이 없는데, 외국에 가면 어떻게 될까’ 겁이 났던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외국인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북한에 비하면 지상낙원입니다. 여러분이 상상을 하기 힘드실 정도로 그 힘든 차별을 겪었는데,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인간의 모습 그 모든 것을 말살하는 것입니다. 그 땅(북한)은 지금 제가 아는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곳입니다.
 
기자: 일본 법원에서 열린 북한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승소하셨는데, 당시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리소라 사무국장: 일본 법원의 1심, 2심 재판관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 문제가 일본에선 정치적인 문제거든요. 재판부가 큰 용기를 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처음 소송을 할 때 최소한 상징적인 의미라도 집중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1심 재판관들이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의하고 접근해 주신 겁니다. 그 부분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의미가 있는 판결이 나왔는데, 고등법원에서는 승소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사안이 원심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저희에겐 한 80% 정도는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제 좀 더 긴장을 하려 하고, 또 북한에서 오고 일본에서 살고 있는 저희들은 정말 소수자에 해당하는데, 이번 일을 통해 법이 왜 존재해야 하며 이 사회의 평화가 법이라는 체계를 통해 보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리소라 '모두 모이자' 사무국장 / RFA PHOTO

 
기자: 북한 당국의 불법행위를 인정 받더라도, 실제로 배상금을 받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리소라 사무국장: 그렇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오토 웜비어 씨 측 변호를 맡았던 변호인들과 저희 변호인들이 연락을 하고 있고, 한국 내 국군포로 어르신들 재판도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보니 그 배상금을 어떻게 회수 할지에 대한 문제거든요. 미국에서는 그걸 회수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졌는데, 일본에서도 조총련 관련 재산 등에 집행을 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와 한국, 미국 측이 국제적인 협력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국회에는 관련 입법도 요청하려 하고 있습니다.
원고들이 지금까지 겪은 피해에 재판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모두 되새겨야 해서 많이 힘들었고,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어도 아직 먼 길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단념하지 않고 가장 좋은 길을 찾기 위해서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기자: 최근 북한이 일본에 관계 개선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리소라 사무국장: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쟁은 갈등보다는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요.
다만 북한 측에는 여러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한미일 협력도 깨고 싶고, 또 일본으로부터 여러 경제적인 이득도 취할 수 있을 것이고, 세계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가 공론화되는 상황에 '우리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려는 일종의 전술로 보이기도 합니다. 국제사회가 그런 노림수에 너무 놀아나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하고, 한국과 일본 등 국제사회는 정도를 걸으면서 북한과 협상한다면 실패는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자: 한국과 일본, 북한 당국에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리소라 사무국장: 우선 저는 북한을 국가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1개의 반란 집단, 악의 집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도 인간이고, 아직 젊잖아요. 당신에게도 인생은 한 번 뿐인데, 용기를 내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의지하지 말고 한 번쯤은 인생을 되돌아보고 용기를 내서 악순환을 끊고 자기 인생을 살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지금 납북자 문제에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에 섭섭함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북한에 간 10만 명 가운데는 수천 명의 일본인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들을 방치하지 말고 북한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으면 하고요.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에 집중해주는 것에는 매우 감사하고 있고, 좀 더 미국과 일본보다 주도권을 쥐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북송 피해자 지원단체 '모두 모이자'는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상징하는 기념물 설치와 '버드나무 거리' 조성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 RFA PHOTO

 
기자: 방송을 청취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당부 하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리소라 사무국장: 여러분이 북한에서 겪는 1분, 1초가 얼마나 길고 힘든지를 저희는 경험자로서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귀한 인생, 그 시간을 좀 더 자유와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에서 보내실 수 있도록 저희가 있는 힘껏, 한국 정부·국민,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으니까 그 곳에서도 최대한 건강과 삶, 시간을 귀하게 여기시고 주어진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 사회에는 당국의 탄압, 특히 연좌제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할 때 주변 분들이 말씀하세요. 북한에 가족이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하는데, 누군가는 이 연좌제를 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게 무서워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북한은 자기들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계속할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로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죄송하지만 역사는 그렇잖아요. 무엇인가 큰 전환점이 올 때 동반되는 희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필요하다면,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그런 마음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여기서 누군가의 목숨, 인권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면 그게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좋은 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요.
지금 탄압을 받아 한 명이 쓰러지면 두 명이 일어나고, 두 명이 쓰러지면 세 명이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라도 그 부조리를 넘어서야 한다, 그래서 용기 있는 분들은 꼭 힘을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분들이 저희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 정부가 지난 2017년부터 제재를 가해서 지금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약도 못 보내고 해서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 제가 더 활동을 열심히 해서 한 시라도 빨리 북한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도 우연하게라도 이 방송을 듣는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라도 살아남았으면 좋겠고요. 여기 있는 가족들은 건강히 잘 있으니, 언젠가는 꼭 만날 희망을 버리지 말고 꿋꿋이 살아 계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자: 청취자들에게 더 전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리소라 사무국장: 저희와 10년 동안 열심히 활동하시던 부대표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북한에서 오신 피해자의 한 분으로서 어떤 보수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원고의 한 분으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못 보고 중병을 얻어 떠나셔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이 분에 대한 기억과 추모의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또 올해는 저희 ‘모두 모이자’ 활동의 전환점이자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루 24시간 중 1분씩만 동참을 해 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고요. 시간이 되시는 분은 시간으로, 지식이 있는 분들은 지식으로, 그것도 어려우시다면 한 달에 5천 원 정도의 지원을 해 주신다면 하루 1분의 활동을 해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이런 ‘1분’ 동참 활동에 많은 한국 국민들께서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기자: 지금까지 리소라 ‘모두 모이자’ 사무국장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목용재,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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